SIGGRAPH 2019 Los Angeles

올해 SIGGRAPH가 열리는 곳은 또 LA다. (SIGGRAPH는 주로 벤쿠버나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다.) 여러 번 가봐서 새로움이 덜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SIGGRAPH에 안갈 이유까지 되지는 않는다. 막상 출발 시점이 다가오니 올해에는 또 어떤 놀라운 결과들이 소개될지.. 여전히 설레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17년 Talks 발표에 이어 올해 SIGGRAPH에서 두 번째 발표를 도전했었지만 아쉽게도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SIGGRAPH는 보통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5일간 열리며, 토요일에는 인근에서 DigiPro가 개최된다. 당연히 이왕 먼 곳까지 간김에 DigiPro 또한 보고 오는 것이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보통 금요일에 도착하는 스케쥴을 짰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DigiPro 등록 정원이 350명인 것은 처음 알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registration이 늦어졌는데, 등록을 하려고 보니.. 350명 정원 초과로 등록 마감. 헐… 이렇게 토요일 하루가 자유일정으로 변경되었다. 좋은건가?

인천공항에서 수하물 검사와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구역으로 들어와서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오후 2시 20분. 로스엔젤레스로 가시는 Choi Wan Ho 님은 25번 게이트 옆 안내 데스크로 오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오디오가 공항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응? 안내 데스크로 갔더니 항공권 티켓을 건네준다. “왜 티켓을 또 주지?” 의아했다. 앗! 수하물 검사 직후에 티켓을 흘린 모양이다. 어쨌든 문제 없이 다시 찾았으니 운이 좋은건가? 하지만 이번 여행 느낌이 쌔~하다.

우리 숙소는 인터콘티넨탈 다운타운. (LA에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두 군데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진 그룹 소유의 호텔이다. 지금까지 가봤던 호텔 중 베스트 퀄러티를 자랑한다. LA 다운타운 한 가운데 우뚝 솟은 73층짜리 건물로 밤에는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KAL 마크가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인다. 특이한 점은 로비가 70층에 있다는 점이다. 바와 로비가 있는 70층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LA 도심 광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불편한 점은 1층에서 객실층에 바로 접근하지를 못하고 70층 로비를 거쳐서 다른 엘리베이터로 갈아 타야한다는 점이다. (31층에서 갈아타는 방법도 있지만 도찐개찐). 70층까지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는 속도가 빨라서 귀가 멍해진다. 어쨌든.. Convention Center 까지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비교적 가깝고, 호텔도 만족스러워서 너무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방 5개 중에서 2개가 자동 cancel 되었다며 여행 첫 날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피곤한 여행 첫 날 여정도 처음이었다. 호텔에서는 왜 취소되었는지 모르니까 agent에 문의하라고 그러고, 한국 시간 새벽 6시에 여행사 담당자분에게 전화거니까 ㅎㅌㅍㅅ를 통해 예약했고, 다시 확인해도 문제가 없다고 그러고… 쌩 난리를 치다가 3시간 정도 후에.. 문제가 없으니 다시 체크인해보라는 연락을 받고 재시도를 해봤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듯이 방 키 2개를 내어준다. ㅎㅌㅍㅅ 측에서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말하기를… 우리가 deposit 카드를 제대로 안줘서 그랬다는 뭐 말인지 방구인지 알 수 없는 이유였다고 그러고… 암튼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결과적으로는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호텔 deposit이 하루에 100달러씩 700달러다. 카드 한도 초과인 일행들은 신용카드 2장으로 나눠서 지불하는 등 호텔 체크인도 난이도가 낮지는 않았다. (나중에 호텔측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체크아웃시 객실마다 1박당 약 $30 정도 하는 city tax라는 것을 또 내라고 한다. 아놔.)

호텔 로비 옆 남자 화장실은 조금 특이하다. 남자 소변기가 일반적인 모양이 아니고 그냥 전망대 유리로 되어 있다. 당황하지 말고 그냥 로스앤젤레스 전경을 향해 일을 보면 된다.

오전 11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 7시. 뭐 하기도 애매한데, 산타모니카(새너모니카라고 발음해야 한다.) 해변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선택한 식당은 Bubba Gump Shrimp! 예~~ 한 번 와봤던 곳이었고 이곳 새우 요리들이 그리웠다.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한 시간 대기 끝에 식사 완료. Blue Hawaiian과 함께한 식사는 만족스러웠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나니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 했다.

북미에 오면 항상 문제는 시차적응이다. 일찍 자나 늦게 자나 새벽 2~3가 되면 눈이 번쩍 떠진다. 이번에도 여지없다. 보통 평균 수면 시간이 3~4시간 뿐이어서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들다. 호텔 TV에는 SBS가 HD로 나와서 새벽 4시에는 8시 SBS 뉴스를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유벤투스 호날두 친선경기 사기(?) 사건과 광주 클럽 내부 복층 구조물 붕괴 사건이 메인 뉴스였다.

이렇게 4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DigiPro 등록 실패로 얻은 전일 자유일정으로 택한 곳은… Universal Studios Hollywood. 이미 세 번이나 가봤고, 싱가폴도 가봤고… 그렇긴 한데, 지난 번 방문 때 공사중이었던 해리포터를 타보기 위해 또 가게 되었다. 돈이 아깝긴 하지만 기회가 올 때 해봐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테마파크 영상을 만들 때 도움을 받기 위한 견학 목적도 아주 살짝 있기는 하다.

드디어 해리포터를 타봤다. 속이 메스껍다. 토할 것 같다. 너무 멀미가 나는 어트렉션이다.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추천해서 이거 하나 구경해보려고 이곳에 다시 왔는데..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다. 게다가 이어서 심슨 라이드를 타니 화룡점정. 더이상 참기가 쉽지가 않았다. 내 몸은 판다익스프레스의 오렌지 치킨과 차가운 콜라를 원했다. 몸 안에서는 나를 내보내던지 차가운 콜라를 빨리 집어 넣어주던지 둘 중 하나를 하라며 계속 나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판다 익스프레스의 긴 대기줄. 4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차가운 콜라를 먹으니 식도를 감싸고 있던 메스꺼움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콜라에 이런 효능이 있다니… 어느정도 컨디션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더이상의 어트렉션을 타는 것은 무리. 이미 다 질릴만큼 타봤고 더이상의 욕심도 없었다. 그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유달리 VR 멀미에 매우 약한 편이긴 하지만 8명 모두 대동소이한 증상을 보인 것을 보면 VR의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느껴진다. (물론 8명 모두 시차적응 문제가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기는 했다.) SIGGRAPH 첫 날 세션중에 “Cybersickness: Causes & Solutions”라는 것이 있던데 한 번 들어봐야겠다.

다른 세션을 듣느라 직접 듣지는 못하고 전해들었는데, VR 멀미 증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몸 상태 또는 컨디션이라고 한다. 아마도 시차 적응이 덜 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격한 모션이 동반되는 라이드를 탄 것이

해리포터 마을에서 파는 버터비어 (Butter Beer).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 강추하는 음료이다. Frozen과 non-frozen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두 종류 모두 이름은 맥주지만 알콜은 없다. 한 잔에 만원 가까이 하는데, 직접 사진 않고 일행들이 산 것을 양해를 구하고 한 모금씩 먹어봤다. 아우 달어. 너무 달다. 캬라맬을 녹인 맛이다. 혼자서 한 잔을 다 먹기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할 때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해리포터를 타기 전 버터비어를 마시고 타면서 뿜던지, 해리포터를 타고 나서 버터비어를 마시고 뿜던지. 우리들처럼 해리포터에서 멀미를 느낀다면 버터비어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올랜도 해리포터는 기차를 타고 롤러코스터 타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던데 여긴 그냥 모형 전시만 되어 있다.

예전에 있던 슈렉 4D는 쿵푸팬더로 바뀐 것 같다. 작년 SIGGRAPH Talks에 드림웍스에서 발표한 “Synthesizing Panoramas for Non-Planar Displays: A Camera Array Workflow”를 논문으로만 봤었는데, 이것도 직접 볼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그 사이에 워킹데드도 새로 생겼다. 일종의 귀신의 집처럼 폐허가 된 건물을 통과해서 지나가면 좀비 분장을 한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위협하는 어트렉션인데, 아우씨.. 가짜인걸 알면서도 진짜 잡을 듯 말듯 다가오는 느낌이 꽤 유쾌하지 못하다. 겨우겨우 지나가다가 코너를 도니 갑자기 환한 형광등 조명이 보이며 직원들이 바닥을 열심히 닦는 모습이 보였다. 직원들이 오지말라며 우리를 다시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뭔 일인가? 누가 지렸거나 토했거나 둘 중 하나로 추측된다.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10분간을 멈춰있는데 뒤에서는 좀비가 계속 주기적으로 튀어나온다. 왓 더 x. 그러더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언제든지 줄을 서지않고 다시 워킹데드존에 들어올 수 있는 티켓을 나눠준다. 여길 또 들어오라고?

나가는 길에 두 딸들이 선물로 사오라고 주문한 마법체스와 헤르미온느(헐마이어니라고 발음해야 한다.) 마법 지팡이를 구입했다. 마법 지팡이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interactive version과 non-interactive version이 있다. Interactive version은 정해진 구역에 가면 마법을 체험해볼 수 있지만, 한국에 가져가서는 소용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non-interactive version으로 샀다. 계산은 옆으로 가서 하란다. 나를 옆으로 데려가더니 장식용 받침대를 쓰윽 내밀며 “이것도 필요하지 않니?”라고 묻는다. 얼마냐고 물으니 3종류가 있는데, 대략 4만원. 살짝 갈등하긴 했지만 용케 참아냈다. 각 기숙사별 목도리, 퀴디치 날개 달린 공 등의 유혹도 있었지만 모두 다 잘 뿌리쳤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기념품들은 확신을 가지고 구입하기에는 대부분 2% 모자르다. 디즈니 캐릭터와 상품이 가지고 있는 돈을 확실하게 지르게 만드는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곳의 하루 매출액은 족히 수 십억은 될 것 같다. 내가 걱정할 대상은 아니다.

내일부터 시그래프 첫 날이 시작된다. 아무래도 첫 날 아침에는 사람들이 뱃지 수령하는 곳에 한꺼번에 몰려 번잡하다. SIGGRAPH에 여러 번 오면서 알게된 팁은 가능하면 전 날 미리 뱃지를 받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여유를 조금 더 가지기 위해 하루 전 미리 뱃지를 get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쳤다.

드디어 시그래프가 시작되는 첫째 날 일정이 끝났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차 적응이 안되고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전 9시~오후 8시까지의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게 쉽지 않다. 어두운 곳에서 피교육자의 입장으로 앉아서 영어로 설명하는 수학을 듣는 것은 졸음이 오는 최적의 조건이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도 예전같지 않은 것 같고.. 힘들다. 가장 큰 압박은 돌아가서 전직원을 대상으로 SIGGRAPH에서 보고, 듣고, 알게된 내용들을 정리하여 세미나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비용을 쓰면서 회사 대표로 참관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발표들은 발표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미나를 위한 자료를 얻는 현장에서 직접 받아 적고 정리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Talks 발표의 경우 약 2페이지의 short paper가 제공이 되긴 하는데, 이것만으로 제대로된 발표 자료를 준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매년 세미나를 진행했지만 매번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매년 같이 오는 멤버들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SIGGRAPH에 가게 됐다고 좋아하다가 한국에 돌아가서는 발표 준비의 부담감 때문에 괜히 다녀왔다고 푸념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리고, SIGGRAPH의 발표들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SIGGRAPH = tutorial 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가 실망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고생하면서 알아낸 노하우를 그렇게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SIGGRAPH에 오면 누가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줄거라고 생각하는건 너무 naive한 생각이다.) 내가 느끼는 대부분 SIGGRAPH의 발표 어조는 이렇다.

“우리는 해냈고 이렇게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발표를 듣는 너희들도 Good Luck!”

어찌됐던 몰려오는 잠을 이겨내며 겨우 하루 일정을 마쳤다. 작년 SIGGRAPH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딥러닝(deep learning)이었다. 올해 역시 딥러닝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지만 손을 데일 정도로 너무나 뜨거웠던 작년과 비교하면 다소 식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신기하고 훌륭한 결과들이 소개되기는 하지만 새로움과 신선함이 조금 덜 한 느낌이랄까… 아직 하루 일정밖에 소화하지 않았지만, 올해의 키워드는 AR과 VR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 세미나에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현재 미국에서 큰 이슈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미국의 유명 식물성 고기 브랜드인 ‘비욘드 미트 (beyond meat)’. 컨벤션 센터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물성 고기 패티로 만든 ‘비욘드 버거’를 맛볼 수 있었다. 진짜 소고기와 구별이 힘들 정도로 맛과 식감이 훌륭했다. 상장한지 한 달여 만에 주가가 약 7배 뛰며 시가총액 10조원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사야하나?

올해 시그래프에서 Geek Bar를 처음으로 이용해봤다. 현재 진행중인 발표들을 한 자리에서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이다. 무선 수신기와 헤드폰을 받아서 채널을 지정하면 원하는 발표를 들을 수 있다. 가끔은 지나간 발표에 대한 재방송도 해준다. 동시에 진행하는 발표를 들으려고 세미나실을 급하게 옮겨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반대로 자세가 너무 편해서 바로 잠이들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Geek Bar는 Exhibition 옆에 있어서 처음으로 Exhibition이 끝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요일 3시 30분이 되자 갑자기 조명들이 일제히 켜지며 환해지더니 스코틀랜드 백파이프로 연주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퍼진다. 올해 시그래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늘 시그래프의 끝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 시그래프는 로스앤젤레스, 벤쿠버의 반복을 벗어나서 간만에 동부에서 열린다. 워싱턴 DC에도 갈 수 있을까?

미국을 뜨기 전에 파워볼을 5장 구입했다. 현재 1등 예상 금액은 약 1천억원!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여지 없이 꽝! 미국 복권은 당첨자가 나왔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시켜주기 위해 1등 당첨자의 상금 수령 사진과 함께 신상이 공개된다고 한다. 그래서, 강도를 당하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고…. 안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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