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GRAPH Asia 2019 Brisbane

올해 SIGGRAPH Asia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다. 2년 전쯤에 개최지를 알게 되었을 때 여기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꿈은 이루어졌고 나는 지금 브리즈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초, 테마파크 영상 제작을 위해 개발하여 사용한 내용을 정리하여 SIGGRAPH 2019 Los Angeles의 Talks에 제출을 했었다. 두 번째 SIGGRAPH Talks 도전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제출했지만 reject라는 결과를 받아보았을 때의 기분은 썩 상쾌하지 못했다. 7명의 리뷰어(reviewer) 중 2명이 점수를 낮게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그 중 한 명은 제출한 동영상이 플레이가 안된다며 “부끄러운줄 알아라.”라는 리뷰 코멘트를 남겼다. 황당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떨어진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SIGGRAPH Asia 2019 Brisbane의 Technical Briefs에 제출했고 운이 좋게도 accept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를 브리즈번으로 보내준 두 명의 리뷰어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SIGGRAPH Asia에서 발표를 하게 된 세션의 제목은 Mixing Real and Virtual Worlds로 VR과 AR에 관련된 4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우리의 발표는 그 중 첫 번째. 동시에 진행되는 세션들 중에 들을만한 것들이 꽤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세션 시작 5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서보고 심지어 바닥에 앉아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 mixed reality (MR), extended reality (XR) 분야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SIGGRAPH Asia와 구분 되도록 북미에서 열리는 원래의 SIGGRAPH를 SIGGRAPH America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어서 알게된 사실이다.

지구의 남반구에 와본 것은 처음이다. 평소 호주와 뉴질랜드의 자연 환경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동식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학회가 호주에서 열린다고 하니 아내와 두 딸이 따라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내년 초에 가족 여행을 생각하고 있던 참에 계획을 바꿔서 우리 네 식구 모두 브리즈번에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남아 있는 휴가도 하루 붙여서 일정을 짰다. 아무래도 SIGGRAPH Asia는 SIGGRAPH America 보다 규모가 작고, 스케쥴 상의 여유가 좀 더 있어서 짬짬이 가족들과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것이 가능해보였다. 특히 내가 학회 일정으로 함께 있지 못할 때에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 좋은 미술관, 박물관 등이 도심 안에 많이 있어서 이러한 결정이 가능했다.

호텔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수가 발생했다. 첫 째 아이의 나이가 어느덧 만 12세를 넘었기 때문에 성인으로 간주되었다.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일반적인 초등학교 6학년은 생일에 따라 12세일 수도 있고 13세일 수도 있다. 11번째 생일에서 12번째 생일까지는 12살로 치지만, 만약 생일이 지났다면 12살+몇 개월이기 때문에 13세, 즉 성인으로 간주된다. 처음에 2인실 한 개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성인 3명이 2인실 하나에 숙박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인실을 하나 더 빌려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기존에는 두 딸들이 모두 어렸기 때문에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돈도 돈이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네 가족이 2인실 두 개로 일주일간 지내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결국 아주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저렴하면서도 나름 괜찮아 보이는 Ibis 호텔의 4인 패밀리룸을 구했다. 더블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이다. 시청 근처이고 퀸스트리트몰과도 가까워서 위치가 꽤 좋다. 컨벤션 센터까지 도보로 20분 정도에 이동이 가능하다.

브리즈번에는 아이비스 호텔이 두 군데 있다. 우리가 지낼 곳은 터벗에 있는 아이비스 호텔이다. 우리가 체크인할 때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어서 편했다. 멤버쉽 가입을 하면 상품 이벤트가 있다고 해서 룰렛을 돌렸는데 무료 아침식사권을 받게되었다. 호텔이 작고 오래되긴 했지만 위치가 좋고 직원들이 모두 친절하다. Deposit이 없는 점도 특이하다. 방안에 냉장고가 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다. 그런데, 디파짓은 없지만 결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신용카드를 달라고 한다. 그게 그거 아닌가? 호텔 와이파이는 너무 느리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는 쓸만한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저녁이나 밤 시간에는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속도가 느리다. 무료로 먹게된 아침 식사는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돈을 지불하고 먹을 때에는 인당 $8을 내야한다.

브리즈번행 항공편은 다행이도 대한항공 직항 노선이 있다. 공교롭게 지난 몇 년간 아시아나 및 다른 항공편만 이용했기 때문에 대한항공은 꽤 오랜만에 이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천공항 제 2 여객터미널도 이제서야 처음 가보게 되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제 2 터미널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공항으로 가는 길은 폭우 때문인지 교통정체가 극심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체크인을 하고 시간에 맞춰서 탑승을 하기에도 빠듯했다. 면세점 구경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브리즈번까지 직항편이 있는 것은 좋은데 현지 도착 시간이 매우 좋지 못하다. 브리즈번 국제공항 도착 시간은 아침 6시 15분이다. 입국 절차 등 이것저것을 하더라도 대략 7시 30분이면 공항에서 나오게 된다. 호텔 체크인 시간인 2시 까지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했다. 찾아보니 다행히도 공항에서의 픽업까지 제공해주는 브리즈번 반나절 시티투어 프로그램이 있었다.

브리즈번 반나절 시티투어는 우리의 일정에 딱 맞는 투어 상품이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밀도있게 다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어서 힘들었다. 브리즈번과 한국은 시차가 1시간 밖에 나지는 않지만, 9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진행되는 투어는 체력적으로 꽤 부담스러웠다. 특히 아직 어린 두 딸들은 너무 피곤해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브리즈번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특히 뉴팜 공원과 일대 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고,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피상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마운틴 쿠사 전망대. 브리즈번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이다. 한국의 남산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된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호주 산불(bushfire)이 휩쓸고 있어서 대기가 뿌옇다.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 비해 다소 덜하긴 하지만 브리즈번이 있는 퀸즐랜드주도 산불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기대했던 청명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연무가 내려앉은 브리즈번의 모습도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 (결국 브리즈번에 머물렀던 6일 동안 파란색 하늘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매일 회색에 가까운 하늘빛이었다.)

이틀 뒤 밤에 다시 들른 마운틴 쿠사 전망대에서는 대기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캥거루 포인트. 백인들이 브리즈번에 정착할 당시에 너무 많은 수의 캥거루들이 살고 있어서 캥거루들을 이곳으로 몰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몰살시켜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비공식적인 유래가 있는 곳이다. 절벽이 꽤 높아서 암벽 등반 연습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브리즈번시를 구불구불하게 관통하는 강 이름 또한 브리즈번이다. 브리즈번강의 물은 불투명하지만 더러운 물은 아니다. 상류 곳곳에서 진흙이 유입돼서 물이 탁하다고 한다. 강 근처에 가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한강변에서 흔하게 맡을 수 있는 물비린내가 전혀 없다.

브리즈번강 북쪽의 아래쪽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지역이 브리즈번의 중심가이다. 시청 및 관공서 등이 분포해 있다. 고전풍의 교회 건물이 있고 중심 상업 지역인 퀸스트리트몰이 있어서 한국의 명동 정도로 보면 된다. 이 구역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아서 도보로도 충분히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의 도로명은 특징이 있는데 세로길은 왕 이름 (윌리엄, 조지, 앨버트, 에드워드), 가로길은 여왕(여왕인지 왕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 이름. 앤, 아들레이드, 퀸, 샬럿, 메리, 마가렛, 엘리스)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건너편 강변에는 사우스뱅크가 있는데, 이곳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인공 해변, 휠 오브 브리즈번 등 브리즈번의 대표적인 명소들이 있다. 브리즈번 도심 안에서는 요정도가 볼거리들의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브리즈번강에는 몇 종류의 유람선이 돌아 다니는데, 빨간색 호퍼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배를 타고 야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1층은 기름 연소 냄새가 나서 2층이 더 좋은데, 2층은 인기가 좋아서 빈 좌석이 없는 경우가 많다. 2층에서는 서있으면 안된다. 시티투어 가이드분께서 한 가지 팁을 주셨는데, 사우스뱅크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종점 방향으로 탑승한 후에 사람들이 종점에서 내리면 2층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을 이용해보라고 하셨다. 간혹 2층에 그늘 가림막이 없는 호퍼도 있는데 강한 햇볕 때문에 이런 배는 그냥 보내야 한다.

Roma Street Parkland. 과거에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었는데 시에서 이곳을 공원으로 개발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브리즈번에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가볼만한 곳이다. 신기하게 생긴 꽃들이 많았는데, 멀리서 보면 하나의 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여러 개의 작은 꽃들로 이루어져 있는 형태가 많았다. 발리나 롬복에서 보던 캄보자 꽃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공원에는 몸 길이 30~50 cm 정도 되는 도마뱀이 자주 출몰하니 모르고 가면 많이 놀랄 수 있다.

브리즈번 공원 및 시내에서 여러 종류의 새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가 아이비스이다. 우리가 묵는 호텔의 이름과 같다. 덩치가 꽤 크고 부리가 길고 특이하게 생겨서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몇 번 보니 약간 혐오감이 들었다. 가끔 나는 모습을 보면 학처럼 보이는데 그리 우아한 새는 아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녀서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은 이 새를 거지새라고 부른다.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비스가 다가가자 가까이 오지말라고 돗자리 위에 옆으로 누워서 발길질을 하던 호주 아버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비스는 벤쿠버의 갈매기 또는 한국의 비둘기와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브리즈번 시내 곳곳에서 보라색 꽃을 피우는 자카란다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봄에 만개했다가 이 때 쯤에는 서서히 진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벚꽃과 같은 계절적 의미를 지니는 꽃이라고 볼 수 있다. 보라색 꽃이 사라진 자리는 빨간색 꽃나무인 포인시아나가 차지하는데 여름이 되면 도시 곳곳을 빨간색으로 물들이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고 한다. 빨간색 꽃과 함께 하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말로만 듣던 호주의 햇살은 살인적이다. 11월이면 늦봄 정도인데 한낮 기온은 35도까지 치솟는다. 썬크림, 모자, 썬글라스, 그리고 마실 물 필수! 늦봄이라고 해서 한국의 5월 날씨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대략 밤 9시 까지는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무리가 없다. 그 사이 한국에는 첫 눈이 왔다고 한다.

사우스뱅크의 인공해변. 브리즈번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이다. 골드코스트의 모래를 가져와서 만든 인공해변 수영장이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구성이 아기자기해서 반나절 이상 즐기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수질 상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았다. 평일에는 주말보다는 한가하다고 한다. 수요일 정도에 기회가 되면 애들이랑 수영하러 다시 와봐야겠다.

호주에서의 첫 식사는 사우스뱅크에 있는 Grill’d에서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브리즈번 맛집을 찾던 중에 리스트에 올랐던 식당 중 하나이다. 수제 버거집인데 와규버거와 모듬 후라이드가 괜찮았다. 양이 꽤 많기 때문에 1인 1메뉴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코카콜라는 없고 펩시만 파는 점이 특이했다.

첫 날 저녁에 가보려던 잇스트릿마켓은 힘들어서 포기. 잇스티릿마켓은 금, 토, 일요일에만 열린다. 다양한 볼거리 및 먹거리가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가지 않기로 했다. 일요일인 내일도 열리지만, 내일부터는 학회 일정도 있고 일요일에는 일찍 닫기 때문에 가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근처에 있는 하나로마트에서 사온 사발면, 햇반, 통조림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참고로 호주는 자연 및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동식물품의 반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먹거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숙소 근처에 한인마트가 세 군데나 있어서 현지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호주의 대표적인 쇼핑 리스트 중 단연 으뜸은 문구 전문 브래드인 스미글.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많이 싸다. 나는 잘 몰랐는데 들어가보니 애들 눈이 돌아갈만하다. 매장에 한 번 들어가면 빈손으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결국 막내의 선택은 random pink egg. 타조알만한 분홍색 케이스에 무작위로 6개의 문구 아이템이 들어있는 제품인데, 둘째가 좋아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하나로 합쳐져있는 제품이다. 그 외에도 가방, 필통 등 득템할 대상들이 끝이 없었다. 호주 상점의 직원들은 매우 친절한데 스미글 직원 또한 그러했다. 우리를 보더니 한국말로 “한국에소 와써요?”라고 묻는다. 스타일이나 느낌으로 보아 BTS 아미임이 분명하다.

근처에 있는 호주의 대표적인 마트 Coles(콜스)의 계산대에도 한국어를 잘 하는 직원이 있었다. 한국어 발음이 꽤 정확해서 깜짝놀랐다. 브리즈번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들도 많아서 LA와 비슷한 빈도로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 LA와 다른 점은 한국어를 잘 하는 현지인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퀸스트리트몰에는 한식당들이 한 곳에 몰려 있어서 조금 과장하면 LA 한인타운 느낌이 난다.

월요일 아침 일찍 코알라와 캥거루를 보기 위해 론 파인 코알라 보호구역(Lone Pine Koala Sanctuary)을 향했다. 호텔에서 우버를 타고 이동하면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코알라는 직접 보면 정말 귀염이 터진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사는데, 유칼립투스에는 잠이 오게 하는 성분이 있어서 하루에 20시간 정도를 잠에 취해있다고 한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니 이게 진짜 코알라인지 인형인지 모를정도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나무 가지에 걸쳐져서 자고 있다. 최근 호주 산불로 인해 350여 마리의 코알라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코알라는 움직임이 느려서 산불이 나면 나무 위로 올라가서 기다리다가 타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50년 멸종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곳에는 코알라를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료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하루에 몇 차례 포토 타임이 있는데 가장 빠른 시간은 9시 30분이다. 입장권과 별개로 티켓을 구입하고 대기줄에서 기다려야한다. 코알라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사진 촬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수 있다. 캥거루들은 야행성이라서 그런지 활발히 움직이지 않고 구석 그늘 밑에 널부러져 있다. 그냥 누워 계신 분들 중에서 아무나 붙잡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 외에도 론파인 공원에서는 새 쇼, 양치기 개 쇼 등의 볼거리도 많아서 동물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브리즈번에서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뱀 쇼 등이 있었는데 오후 학회 일정 때문에 오전만 관람하고 다시 돌아왔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일본 학생들도 단체로 왔다. 아마도 호주로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았다.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대부분 긴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조끼와 니트를 입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날씨에… 선생님이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게 아닐까?

일요일. 반가운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었다. 론파인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보대로 먹구름이 몰려와서 비가 오기는 했는데, 비가 내린 시간이 짧고 강수량도 많지 않았다. 뉴스를 보니 브리즈번 공항 등 브리즈번 일대에는 자두만한 우박이 내려서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위성 사진을 보니 비구름이 바다로 밀려 나가서 산불 해소에는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 듯하다. 호주는 기본적으로 땅이 메말라 있고 척박하다. 특히 매년 이맘 때에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올해 산불은 정말 심해서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더이상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맞불을 놓아서 산불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서도 탄 나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대기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머리를 감고 대충 털고 나가면 금세 머리가 다 말라버린다.

저녁이 되자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예전에 재경부 건물이었던 곳은 현재 카지노로 운영되고 있는데, 24시간 영업을 한다. 안에서 술을 마시며 구경만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가보고 싶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패스.

카지노 앞 호주산 스테이크를 단돈 $10에 먹을 수 있는 곳. 맥주까지 한 잔 마시면 $20정도에 풍성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가로수에 박쥐들이 날아든다. 박쥐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날아다닐 때 면적이 넓은 날개의 실루엣은 익숙해서 단번에 새가 아닌 박쥐임을 알 수 있다. 거꾸로인 상태로 나뭇가지를 걸어다니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박쥐를 보고 놀라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은 관광객,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현지인이다.

SIGGRAPH Asia는 예상보다 규모가 더 작았다. 쉴 새 없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SIGGRAPH America보다 훨씬 인간적이라서 좋다. 브리즈번의 여유로운 삶과 어울려 조촐하게 학회가 진행되고 있다. BCEC(Brisbane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의 와이파이 상태는 훌륭하다. 심지어 건물 밖에서도 신호가 잘 잡힌다. 이곳에서 볼 일들을 많이 해결해야 한다.

무게라 호수 은하수 별빛 투어. 밤 하늘에 빼곡하게 가득 차 있는 별들과 은하수(Milky Way)를 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예약을 했다. 하지만 산불 때문에 전날까지도 무게라 호수에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출발 당일, 여행사에서는 갈 수 있다고 하여 투어는 진행됐다. 무게라 호수는 댐을 막으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여러 개의 국립공원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주변에 빛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북반구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의 기준을 잡기 위해 북극성을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을 이용하여 방향을 찾는다고 한다.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별자리들을 볼 수 있다니 설레였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서 무게라 호수까지 이동했다. 탑승한 차량은 벤츠 스프린터인데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진동과 노면 소음이 심했다. 가는 길에 산불로 인한 연기 띠가 하늘 이곳 저곳에 걸쳐 있었다. 지난주까지는 산불 연기 때문에 별은 커녕 숨쉬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나마 어제 잠시 있었던 우박을 동반한 돌풍 때문에 많이 깨끗해진거라고… 호수에 가서 보니 남십자성과 은하수가 보이는 남쪽 하늘은 자욱한 연기띠로 가려져 있었다. 역시나.. 보이는 별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 남쪽 하늘의 은하수는 산불 연기 때문에 못본다고 하더라도 머리 위 하늘에는 별이 어느정도는 보여야 되는거 아닌가. 이 정도 별은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일행 중 한 분은 너무한거 아니냐며 클레임을 제기했다. 조금 더 알아보니 별자리를 보기 좋은 시즌은 겨울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무게라 호수로 별보러 가는게 아니라고… 그리고, 보름달이 뜨면 달빛이 너무 밝아서 별이 잘 안보인다고… 별자리 투어를 가려면 이것저것 잘 살펴보고 가야할 것 같다. 산불이 아니더라도 날씨 등의 변수가 많고 (무게라 호수는 갑자기 안개가 생길 수 있는 등 날씨가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일단 가보고 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운에 맡겨야 하는 투어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가이드분이 매우 친절하고 호주 이민 생활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재미있게 말씀해주셔서 그나마 돈이 덜 아까웠지만 비용에 비해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무게라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캥거루들이 자주 튀어나와서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산불 때문에 캥거루들이 다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도로로 뛰어드는 캥거루를 목격하기는 어려웠다. 무게라 호수에서 브리즈번까지 오는 길은 대표적인 물류 통로라서 큰 트럭들이 많이 다니는 복잡한 도로인데 우리 외에 다른 차는 거의 없었다. 산불 때문에 이곳저곳에 통행금지가 내려져 있어서 차들이 안다닌지 며칠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있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야행성이라 어두운 밤에 출몰하는 캥거루들의 로드킬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큰 트럭 뒤를 바로 쫓아가는 거라고 한다. 장거리를 가는 큰 트럭에는 캥거루를 수 초간 정신이 나가게 만드는 사운드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간혹 운전하다가 보면 길가에 멍하니 서 있는 캥거루들이 있는데, 트럭에서 나오는 강력한 음파에 얻어 맞아 잠시 정신을 잃은 애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유료 앱까지 구매하서 촬영한 별사진이다. 눈으로 봐도 요정도만 보이는게 전부다.

Taken with NightCap. Stars mode, 10.03 second exposure, 1/3s shutter speed.

BCEC 근처에 있는 아시아 퓨전 음식점 太太 (Tai Tai). 호텔과 BCEC를 왔다갔다 할 때마다 지나가면서 보니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 가봤다. 볶음면, 딤섬 및 각종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데 꽤 맛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만하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서 수요일 아침 일찍 인공 해변에 가봤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수영장 바닥까지 모래로 되어 있고 야자수 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서 진짜 해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공 해변임에도 갈매기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보면 얼마나 진짜 해변 같은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놀았는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이곳에서 더 이상의 시간을 보내기는 무리였다. 정말 햇살이 너무 따갑다. 이 곳에는 갈매기 말고도 까마귀, 아이리스, 비둘기,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많이 찾아 온다. 다양한 새들이 찾아와서 목을 축이고 가곤 했는데, 거지새라고 불리는 아이리스가 날개 구석구석을 깨끗히 씻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물에서 사람들이 좋다고 물놀이를 즐긴다…..

시그래프 일정이 모두 끝나고 하루 종일 프리한 호주에서의 마지막 날 휴가일. 무엇을 할까 고민이 많았다. 브리즈번에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골드코스트가 있다. 조금 조사를 해보니.. 골드코스트 여행의 메인은 바다에서의 액티비티인데, 둘째의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사진들을 보니 바다에서 액티비티를 즐길게 아니라면 광안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특별한 맛집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골드코스트는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반대로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썬샤인코스트가 있다. 차를 렌트해서 가볼까 했는데, 호주는 한국과 반대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우회전, 좌회전 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일방통행도 많아서 역주행을 할 것 같았다. 과속에 대한 엄청난 벌금도 부담스러윘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조수석에 발을 올리고 가는 차량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좌측 운전석 방향이 익숙한 나는 발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라는 순간이 많았다. 우버를 부를 때에도 차의 오른쪽으로 타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길 반대쪽에서 기다렸던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썬샤인코스트도 포기. 열대 과일 농장 투어가 있다고 해서 솔깃했는데 일요일만 투어가 가능하다고 해서 포기. 탬보린 산 동굴 속 반딧불 투어가 있다고 해서 솔깃했는데 후기를 보니 반딧불이 얼마 없다고 해서 포기.

결국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모튼 섬 투어를 예약했다. 가는 길에 배멀미가 심하다는 글들을 많이 봐서 모튼 섬은 여행 계획 초기에 포기했는데, 브리즈번에서 더 이상 할게 없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다 싶어서 과감하게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효능이 좋다는 배멀미약도 구해서 갔다. 모튼섬 투어 3일 전. 이곳에도 산불이 났다. 뉴스를 보니 시뻘건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다른 투어에서 만난 모튼 섬을 앞서 다녀온 관광객들도 연기 때문에 숨 쉬기도 어렵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 모튼 섬 투어 하루 전. 유튜브 중계를 보니 불길은 어느정도 잡혔는데 여전히 섬 이곳 저곳에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애들을 데리고 가기는 무리일 것 같아서 여행사에 문의해보니 취소 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출발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환불도 불가하다고 해서 우리도 투어를 강행하기로 했는데… 전날 밤 아내가 아프다. 결국 모튼 섬 투어 불가!

우리의 사유로 가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선지급한 투어 금액은 전혀 환불 받지 못했다. 대신 그냥 여유롭게 사우스뱅크 인공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충분히 만족해 했다. 물놀이를 즐기기 전에는 커피와 브런치 맛집인 커피 엔쏠로지(Coffee Anthology)에 들렸다. 커피와 크로와상 애그 베네딕트가 맛있는 집이다. 물놀이를 하고 나서는 근처에 있는 맥스 브래너(Max Brenner Chocolate Bar)에서 쵸코 바나나 피자를 먹었다. 피자 빵 위에 쵸콜렛을 녹여서 바르고 그 위에 마쉬멜로우, 바나나, 견과류를 얹은 요리이다. 단것을 좋아한다면 한 번 먹어보는걸 추천한다.

호주에서는 버거킹을 헝그리잭이라고 한다. (버거킹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았음.) 퀸스트리트몰 중심에 보이길래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값은 착한데.. 햄버거 상태가.. 좀.. 짜고 맛 없고 든거 없고.. 그냥 싼 맛에 먹는 버거다. 이게 이름만 다른 버거킹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럽다.

브리즈번의 대부분의 가게는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그래도 식당들은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데, 일반 상점들은 일찍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에 살게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 인간적으로 너무 일찍 문을 닫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신 아침 6~7시 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8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결코 일을 적게 한다고 볼 수는 없다.

브리즈번 시티의 건물들은 대부분 틈이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래도 가끔은 건물 틈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는 곳이 있는데, 이런 장소에는 어김없이 카페나 식당이 있다. 이러한 카페나 식당들도 아침 일찍 문을 열었다가 잠시 영업을 하고 닫는 게릴라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음식 맛을 보고 싶다면 영업 시간을 잘 알아봐야 한다.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있었지만 (여행이란 그런거니까…), 그럼에도 가족들과 함께 보낸 브리즈번에서 6일은 너무 좋았다. 아이들도 너무 좋은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브리즈번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장 부러웠다. 한국에 도착하니 일단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다르다. 한국과 호주의 분위기가 다른 원인이 무엇일까? 짧은 시간이지만 투어 가이드분들에게 호주 이민 생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름 종합해본 결과 가장 큰 이유는 사회보장제도인 것 같다. 호주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많은 것들을 국가가 해결해준다. 공부를 못해도 기술을 배우면 고학력자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 은퇴를 해도 노후 걱정이 없다. 발리 등으로 여행을 하면서 삶을 즐긴다. 한국에서는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함이 있다면, 호주에서는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사회가 한국 만큼 다이나믹하지는 못해서 삶의 재미는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다. 그 만큼 정치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봐야할 것 같다. TV 프로그램들도 재미있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하다가 일찍 퇴근해서 쉬다가 일찍 자는게 호주 사람들의 삶인 듯 하다. 우리는 대부분 하루 종일 일에 지쳐 있다가 집에 와서 밤 늦게까지 고작 TV 오락 프로를 보면서 깔깔거리다가 잔다.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는 인생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호주, 특히 호주의 도시는 기대치를 낮추고 구경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호주 여행은 한국에서는 보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다양한 동식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맑은 공기를 즐기는 정도에 초점을 맞춰야지 그 이상의 어떤 대단한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도 워낙 대륙이 넓기 때문에 다른 곳들은 분위기나 느낌이 브리즈번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쉽지 않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도시들이나 뉴질랜드도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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