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롬복 & 싱가포르 가족 여행

회사 근속 5주년 기념으로 여행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롬복), 필리핀 (보라카이, 세부, 보홀), 팔라우, 베트남 (다낭),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싱가포르, 브루나이, 태국 (푸켓, 방콕, 파타야, 코사무이), 라오스, 캄보디아, 괌, 사이판, 하와이, 몰디브, 뉴칼레도니아, 오키나와 등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인도네시아 롬복 + 싱가포르” 코스를 선택했다.

롬복은 지난해 11월 인근 발리섬의 아궁화산이 분화하면서 공항이 폐쇄되어 관광객들 발이 묶이는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3개월 이상이 지난 지금도 국가에서 지정하는 최고위험경보단계 여행자제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걱정을 좀 했었는데 여행사와 현지인, 다녀온 사람들 블로그 등의 정보를 종합해 보고 이정도면 가도 큰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하였다. 어딜가나 아무런 위험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하는 시기에 필리핀은 태풍이 세부를 직관통해서 지나가고 있었고, 몰디브는 정치적 비상사태가 발발했으며, 괌은 진도 6.0의 지진이 발생했다. 수 백 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해외여행을 가는데 한국 & 중국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서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경유하여 14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롬복 카타마란 리조트에 도착했다. 어느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아직은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환승하면서 총 9시간을 비행하는 것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출발하는 날 서울에는 영하 10도의 기온과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같은 날인데 여기는 완전 한여름이다. 수영장 안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는게 잘 실감나지가 않는다.

출발 직전에 포항에서 진도 4.6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경보를 들었는데 큰 피해는 없는 듯해서 다행이다. 요 며칠 사이 지구 곳곳에서 지진, 화산 등의 소식이 잦았다. 필리핀 마욘화산 분화, 대만 화롄 지진 등이 발생하면서 ‘불의 고리’ 50년 주기설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윤식당’을 통해서 롬복섬이 한국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롬복행 실크에어 비행기 안에서 우리 네 식구 외에 한국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이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롬복을 갈 때 발리를 경유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최근에는 직항편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발리에 비해 롬복은 상대적으로 관광객 수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어딜 가나 관광객들이 붐비지 않고 식당에도 빈자리가 많다. 관광객은 백인이 가장 많고, 한국인은 거의 없으며 중국인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호주나 유럽 관광객들이었고 비행기에서 내 옆 할아버지는 카자키스탄 분이었다. 신혼여행객 또한 거의 없었고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한가하고 여유로우며 한국인을 찾기 어려운 이런 여행 상황 정말 바라던 바다.

롬복 국제 공항은 지어진지 몇 년 안됐다고 들었는데 그닥 new한 느낌이 들지 않는 소박한 공항이었다. 질문도 없이 도장만 찍어주는데 창구가 셋 뿐이고 그것도 두개만 오픈을 해서 입국 수속이 너무 느렸다. 롬복공항에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 가이드 허니를 만났다. 허니는 나와 동갑인데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 수원에도 몇 년 있었다고 한다. 아궁화산 사태 이후로 한국 관광객 발길이 끊겨서 우리가 그 이후 첫 손님이라고 한다. 몇 달 동안 개점 휴업상태여서인지 우리를 매우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야기 하면서 알게 됐는데 허니는 한국에서 플라스틱 공장에서 3년 정도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집과 땅을 샀다고 한다. 우와~! 한국에서 일해서 돈벌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지 못했을거라고 했다. (허니는 7살, 1살 이렇게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사장님 나빠요~” 이미지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욕 먹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돈 떼먹는 사장님 없다고 다 좋다고 한국 최고라고 연신 칭찬을 해줘서 다행스러웠다. 한국은 안전하고 정말 잘 사는 나라라고 엄지척을 해주었다.

롬복공항에서 카타마란 리조트 까지는 차로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곳은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이다. 길도 구불구불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고, 같이 달리는 스쿠터들이 많아서 감히 직접 운전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롬복에는 버스 같은 대중 교통이 없어서 스쿠터가 없으면 이동이 어렵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특별한 면허 없이 할부로 스쿠터를 구입해서 통학 한다고 하는데 밤에도 스쿠터랑 차들이 뒤엉켜서 움직인다. 매우 위험해 보였는데 실제로도 사고가 많다고 한다.

롬복은 제주도 면적의 약 3배의 크기의 섬으로 약 3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롬복은 ‘빨간색 고추’를 뜻한다. 이곳 사람들은 매운 고추로 만든 요리를 즐긴다. 음식들이 맛이 없지는 않은데, 전체적으로 맵고 매우 짜다. 보통 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흰 쌀밥이 같이 나오는데, 이 밥과 같이 조금씩 반찬 삼아 먹으면 먹을만하다.

롬복 사람들은 8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다. 2010년에 다녀온 발리는 대부분이 흰두교를 믿기 때문에 두 섬이 가깝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꽤 다르게 느껴진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는 먹지 않고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 소고기도 먹기는 하지만 닭고기 보다 비싸서 즐겨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닭 한 마리에 우리 나라 돈으로 2천원 정도, 소고기는 닭고기 보다 최소 5배 이상 비싸다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하며 물건을 주거나 받을 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자국민이 왼손을 사용하면 크게 화를 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관대롭다고 한다. 또한 집에서 개를 키우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개들이 가끔 보이지만 주인이 없는 개들이다. 이슬람교에서 개는 불결하고 불경한 동물로 취급받는다. 반면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는다. 식사를 할 때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길냥이들이 많은데 개와는 달리 고양이를 모질게 내쫓지는 않는다. 옛날에 이슬람 지도자가 곤경에 처했을 때 고양이가 잠을 깨워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개는 짖어서 숨어있던 이슬람 지도자가 잡힐 뻔한 설화가 있다고 한다.

차로 이동하는 중에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과 하교할 때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무슬림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교복으로 히잡을 쓰고 있었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학생들도 일부 있는데 이렇게 타종교를 믿는 여학생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특별히 차별이나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발리에 갔을 때 대부분의 자동차가 도요타였었던 기억이 나는데 롬복도 도요타, 미쓰비시 등의 일본 자동차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우리 가이드인 허니에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일본을 싫어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옛날 일본 사람들은 나쁘지만 지금 일본 사람들은 나쁘지 않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우리와는 달리 최소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과거 일본의 침략 역사가 감정적인 앙금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숙소인 카타마란 풀빌라 리조트에는 밤에 도착했는데 조명과 어우러진 조경이 환상적이었다. 지어진지 2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탁 트인 전망의 로비와 식당, 해변 옆의 투명한 유리벽 수영장 등이 인상적이었다. 식당 바로 앞에는 멋진 뷰를 지닌 망싯비치가 있는데 파도가 높아서 물놀이를 하기에는 어렵지만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의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식사 후에는 모아나에서 나오는 모습의 해변을 따라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산책을 할 수 있다. 구름이 많아서 잘 안보이지만 구름이 걷히면 바다 건너편 저 너머에 구름 위에 얹혀 있는 발리섬의 아궁화산이 꽤 크게 보인다. 분화구에서는 아직도 조금씩 연기가 나오고 있다. 가끔은 약간의 버섯 구름 형태도 볼 수 있다. 아궁화산의 규모를 보니 분화했을 때 정말로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독채형 단독 풀은 깊이가 140cm로 아이들이 놀기에는 수심이 다소 깊다. 아우디 게코와 크기 및 모양이 똑같은 도마뱀들이 벽을 타고 많이 돌아다닌다. 이런한 광경을 처음 봤다면 많이 놀랐을텐데 그래도 발리에서 한 번 봤다고 얘네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도마배앰~ 도마배앰~ 무슨 일이든지 척척해낸다~”라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된다.

공용 수영장은 하얗게 부숴지는 거친 파도가 끝없이 밀려드는 해변에 맞닿아 있다.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나와서 누워있다가 먹다가 자다가.. 너무나 평화롭다. 천국과 같은 카타마란 리조트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인도네시아 롬복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리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시차가 달라서 네이버에서 확인을 하면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시차가 2시간으로 나온다. 그런데 황당한 문제를 겪었다. INDOSAROOR라는 현지 통신사 해외 로밍 서비스를 사용했는데 휴대폰 시간이 왔다갔다 한다. 어쩔 때에는 한 시간 차이가 나고 또 어떤 때에는 두 시간 차이가난다. 스마트폰 시간 설정을 자동으로 해놓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수동으로 시간대를 설정해야 한다.

달러를 가지고 와서 현지에서 루피아로 환전하는게 좋다고해서 달러만 준비해왔다.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100달러 정도만 환전했다. 환전하면 100,000짜리 지폐를 많이 주는데 0이 많아서 꽤 고가권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돈으로는 8천원 정도에 해당하는 지폐이다. 간단하게는 그냥 0 하나 빼고 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지폐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네델란드가 침공했을 때 맞서 싸운 영웅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인도네시아 지폐에는 외세에 맞서 싸운 영웅들이 많다고 한다.

발리에서도 많이 봤었는데 롬복에도 캄보자 나무가 많다. 분홍색에 흰색이 살짝 섞여 있는 꽃이 너무 예쁘다. 향기도 좋아서 이 꽃으로 향수와 화장품도 만든다고 한다. 나무에서 떨어져서 수영장 물 위에 둥둥 떠 있기도 하는데 장식용으로 물을 담아 띄워 놓기도 한다. 정원을 만들 때 선택하고 싶은 정말 탐나는 품종이다.

마트가 눈에 많이 띄는데 특히 Alfa Mart가 정말 많다. 차를 타고 가면 거의 5분에 한 번 꼴로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용한 마트는 CoCo Mart. 마트는 전세계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마트만큼 많은게 있는데 사원이다. 사실 롬복의 상징은 사원이라고 한다. 초록색 둥굴면서 위쪽이 뾰족한 지붕을 가진 사원들이 마을마다 하나씩 있다. 지나가다가 본 중심지에 있는 사원은 인도네시아 사원 중에 가장 크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한달간 먹고자고 하는데, 공짜로 밥을 주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모든 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윤식당’ 때문에 한국에 잘 알려진 길리섬으로 향했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데 파고를 헤치며 가기 때문에 점프를 계속해서 롯데월드의 놀이기구인 스윙팡팡을 타는 듯 했다. 길리섬은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는 윤식당으로 유명해진 트리왕안 섬을 방문했다. 나머지 두 개 섬은 멀리서 봤을 때 산이 없이 납작한 평지 형태로 다소 신기하게 보였다. 스피드 보트는 특별한 선착장 없이 해변에서 승하선을 한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윤식당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막다른 길에 막혀서 되돌아 왔다. 그 막다른 길 옆을 돌아서 조금만 더 가면 윤식당이 있다고 하는데 뭐 그닥 다시 걸어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는 않았다. 섬 가장자리 길을 따라 호텔과 식당 등의 상점이 나열되어 있는데 군데군데 해변은 쓰레기가 꽤 많아서 실망스러웠다. 해변에 죽은 산호 껍데기들이 자갈처럼 많아서 맨발로는 발바닥이 아프다. 물 속에도 딱딱한 산호들이 돌덩이처럼 군데군데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부딪혀서 다치기 쉽다. 섬 한 바퀴를 자전거나 마차로 돌아볼 수 있는데 윤식당까지 걸어갔다 오는 길에 보니 뭐 그닥 특이한 구경거리는 없는 듯 하여 하지 않았다. 길리섬 해변은 파도가 높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스노클링 장비를 구입해서 갔는데 해안선 가까이에는 어쩌다 한 두 마리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많은 열대어들과 거북이도 볼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봤는데 수영을 못하는 나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가다가 포기했다. 가다가 힘이 빠져서 죽을 뻔 했다. 수영을 잘 하는 아내는 다녀와서 평생 소원을 풀었다고 자랑을 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죽음의 공포를 한 번 느끼고 나니 굳이 안봐도 되겠다 싶었다.

롬복섬에 있는 높은 산에 차를 타고 올라가면 원숭이 집단 서식지가 있다. 발리에서도 원숭이 사원을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원숭이가 안경, 모자, 카메라, 가방 등을 쌥쳐서 나무 위로 튀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곳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롬복 원숭이들은 발리처럼 사악하지 않고 “먹이 좀 주세요.”하고 공손하게 기다린다고 한다. 가는 길에 원숭이들에게 나눠줄 먹이를 사서 올라갔다. 듣던대로 착한 애들이었다. 더 못줘서 미안. 내려오는 길에 앞이 안보이는 폭우를 만났는데 조금 더 내려오니 아래쪽은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지형적인 원인에 따른 국지성 폭우였던 것 같다. 롬복의 2월 날씨는 30도를 오르 내리지만 대부분 구름이 많아 아주 뜨겁지는 않다. 하지만 한 낮에 구름이 걷히면 정말 뜨겁다. 화상 입기 딱 좋은 날씨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비가 오는데 30분 정도면 그친다. 롬복은 태풍이 오지 않는다. 자잘한 지진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큰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롬복은 신혼여행지로 다녀온 하와이보다 훨씬 좋았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훌륭한 휴양지이다. 힐링을 위한 휴양지를 찾는다면 추천받아 마땅하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내일은 싱가포르로 출발한다. 나만 세 번씩이나 가 본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싱가포르를 경유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의 경유지이자 두 번째 목적지인 싱가포르. 롬복에서 싱가포르 까지의 비행시간은 2시간 40분이다. 공항에 내려서 우버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날씨가 매우 좋았고 거리는 듣던대로 깨끗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 수영장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상징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보인다. 여기서 1박 정도 묵을까도 생각했었는데 롬복에서 충분히 물놀이를 하고 오는 일정이기 때문에 숙박비가 비싼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후보에서 제외했다. 밤에 이 호텔에서 펼쳐지는 레이저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건너편에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나 마리나 만다린 호텔에서 오히려 더 잘보인다고 해서 우리의 숙소는 마리나 만다린 호텔로 정했다. 듣던대로 호텔 발코니에서 불꽃놀이를 동반한 레이저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롯데월드 타워 불꽃축제 등을 종종 봐서인지 뭐 그다지 특별함은 느낄 수 없었다.

싱가포르는 총 차량 대수 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교통 정체가 없다. 면적도 작아서 차로 이동하면 주요 관광지 어디든 20분 내외로 갈 수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구글맵에서 확인해보니 자동차를 이용할 때 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그리고, 우리는 4명이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일반 택시도 친절하고 깨끗하다. 둘 다 이용해본 결과 오히려 일반 택시가 우버 택시보다 저렴했는데 일반 택시는 아무데서나 잡아서 탈 수가 없고 반드시 택시 정류장에서만 타야하는 단점이 있다.

숙소 근처에 큰 쇼핑몰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마리나 만다린 호텔과 붙어있는 마리나 스퀘어, 또 다른 하나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붙어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쇼핑 센터이다. 후자가 훨씬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대도시의 쇼핑몰은 다 비슷비슷 그게 그거다. 마리나 베이 샌즈 쇼핑 센터로 가는 길에 있는 유스 올림픽 파크는 거대한 일산 호수 공원 느낌이 들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각종 이벤트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싱가포르 도심의 분위기는 중국과 미국을 섞어놓은 듯 하다. 아니 자유로운 분위기의 중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는 그냥 중국이다라는 느낌이 강해진다. 파는 옷들은 대부분 빨간색이며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또한 매우 중국틱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중국인처럼 보인다. 다소 자유분방하고 다소 세련된 중국인.

싱가포르에는 단순하게 지은 건물이 없는 듯 하다. 저마다 독특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크기도 어마무시하다. 약간 벤쿠버나 LA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롬복에 있다가 와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도심이 전체적으로 인공미가 너무 강하다. 공기도 안좋고.. 롬복이 그리워진다. (개인적으로 대도시로의 여행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싱가포르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금연 장소에서 흡연을 할 경우 강력한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로 유명하다고 알고 왔는데.. 개뿔.. 조금만 외진 지역으로 가면 길바닥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 있고 금연 표시 바로 옆에서 길빵들 하고 있다. 오픈된 공간에서의 흡연은 허가되어 있다고 하는데 길거리에서 담배 피는 모습을 한국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깨끗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레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무결하지는 않다.

싱가포르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이다. 우버 택시를 타고 센토사 섬으로 이동했다. 운전 기사 아저씨는 좌파와 반정부주의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분이었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하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국 정부와 리콴유 일가에 대한 욕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국은 돈 받으면 대통령이라도 처벌하는데 리콴유 일가는 돈 받아도 아무도 말을 못꺼낸다며 마피아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북한과 다를게 없다라고 말하길래, 싱가포르는 북한처럼 핵미사일을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했더니, 싱가포르는 미국과 일본이 지켜주기 때문에 언제든지 핵배치가 가능한 핵보유국으로 보는게 맞고, 일본에 군사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눈치를 많이 본다며 신랄하게 자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 후에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정부 비판론은 계속 됐다.

그렇게 도착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규모가 너무 작아 실망스럽다. 그냥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맛보기 버전인듯하다. 게다가 거의 절반은 그냥 드림웍스랜드라고 봐야한다. 계속 흘러나오는 중국스러운 배경음악. 본토 유니버설 스튜디오와는 달리 타겟 연령층도 훨씬 낮다. LA에는 없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꽤 있어서 어린이 대공원 느낌도 사뭇 들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재작년에 다녀온 도쿄 디즈니랜드가 훨씬 낫다며 실망스러워 했다. 다만 쥬라기 공원 라이드는 싱가포르 버전이 조금 더 재미있었다. 이제 나이가 먹어서 놀이기구를 몇 시간씩 기다려서 타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 그래서 구입한 익스프레스 티켓. 줄 안서고 바로 들어가는 고가의 티켓이다. 이미 LA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이 티켓을 이용한 자본주의의 파워를 경험했기 때문에 싱가포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도 망설임 없이 익스프레스 티켓을 구입했다. 그런데, 익스프레스 티켓도 20분 이상 줄 서서 타는 경우도 많았고, 아예 익스프레스 티켓이 적용되지 않는 라이드들도 있었다. 눈탱이를 심하게 맞은 느낌. 익스프레스 티켓이 프린트된 A4용지를 들고 다니면서 들어갈 때마다 바코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황당했다. 주머니에 구기적 거리며 가지고 다녀야 하고, 검사할 때마다 꺼내서 보여줘야하는게 여간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수 없었다. 손목 밴드 타입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그건 언리미티드 티켓(무제한 익스프레스 이용권. 우리껀 한 번만 익스프레스.)만 주는거라고 그냥 들고 다니라고 했다. 완전 짜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다른 곳에 비해 티켓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올 곳은 절대 아님!

센토사 섬에 온김에 팔라완 비치도 구경해보기로 했다. 센토사 섬 내에서는 모노레일인 센토사 익스프레스와 버스인 비치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센토사 섬의 모습들. 인공적으로 손을 안댄 곳이 없다. 다시 한 번 더 느끼는 인공미의 극치. 구석구석까지 안깔끔한 곳이 없기는 한데, 뭐랄까 ‘플래닛 코스터’로 만들어 놓은 조경의 느낌이라고 할까나.. 나와는 맞지가 않는다. 팔라완 비치는 물결이 잔잔한 작은 해수욕장을 가지고 있는데 물은 흙탕물. 흔들다리를 건너서 아시아 대륙의 최남단 지역을 찍고 호텔로 돌아왔다.

싱가포르는 관광지 어딜 가나 주변에 한국 사람이 항상 있다고 봐야할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선가 항상 한국말이 들린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은 설날이다. 새벽 2시 비행기라서 호텔 체크아웃을 한 후에도 14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설날 당일에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새공원과 식물원 등에 가서 최대한 삐대다가 공항으로 갈 예정이다.

설날 당일 호텔 앞에서는 북을 치며 용과 사자 인형 쇼가 펼쳐졌다. 짐을 호텔에 맡기고 시티투어 이층버스에 탑승했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의 노선으로 운영되는데 표를 한 번만 구입하면 자유롭게 환승이 가능하다. 하지만 설날이라서 일부 노선은 운행하지 않은 관계로 중간중간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싱가포르에서 교통비 지출이 꽤 부담스럽다. 예상대로 설날에는 주요 관광지 및 대형 쇼핑몰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마리나 베이 샌즈 쇼핑 센터 등의 쇼핑몰에는 웬만한 식당에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식물원인 보타닉 가든 입구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는 The Halia 식당은 의외의 맛집이었다. 정글 숲 속에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와규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 패티가 굉장히 부드러웠다.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서인지 식사 후에도 소고기, 감자 등의 식재료 향이 입 안에 기분좋게 남아있었다. 주롱 새 공원은 새들만 있는 동물원이라고 보면 되는데 so so하다. 독수리 등이 나오는 쇼가 볼만은 했으나 용인 에버랜드 판타스틱 윙스 공연 완승!

싱가포르는 3일 정도 밖에 경험하지 않았지만 오묘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깔끔하고 자유롭게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사람들이 세뇌와 통제를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뭔가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짓눌린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보다 못살던 시절에는 싱가포르의 현대적이 모습과 쇼핑 환경이 해외 여행의 매리트가 되었을 수는 있었겠지만 이제는 크게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싱가포르가 경유지 이상의 매력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에 오는 것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이번 여행의 승자는 아이폰. 아이폰 라이브 포토 짱. 방수 기능 굿. 그러나 물 속에서 터치 안됨. 롬복 킹왕짱. 싱가포르 왕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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