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 출장

중국 “하얼빈”. “할빈” 또는 “하르빈”이 보다 정확한 발음이다. 영문으로도 Harbin으로 표기하는데, 어디에도 “얼” 발음을 야기하는 스펠링은 없다. 한국에서는 “하얼빈”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발음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비록 짧은 일정(1박 2일)의 출장이긴 하지만.. 내가 이곳에 와 보리라고는 진짜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 하얼빈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든 생각은.. “중국 동쪽 어딘가에 있는 마을? 시골 촌동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 뿐이었다. 나에게 하얼빈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거의 전부는 안중근이라는 키워드이고, 역사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봤던 흑백 사진을 기준으로 시간은 멈추어 있었으며, 어렴풋한 흑백 사진이 하얼빈에 대한 별 감흥 없는 느낌의 전부였다. 그리고, “완다 테마파크가 왜 저런 곳에 있지?” 라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의문 뿐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하얼빈 공항까지 아시아나 직항편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사실 이런 것 보다 더 궁금했던 점은.. 서울로부터 정북쪽보다 약간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하얼빈까지의 비행기 항로가 북한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돌아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북핵문제의 심각성이 최고조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방사능 오염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지도로 대략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어서 안심했다.

두 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이 지나자 창문 밖으로 하얼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지가 전혀 없이 끝없이 펼쳐진 농경지. 마치 유럽 낙농국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광경이 양쪽 창문을 통해 펼쳐졌다. 별다른 감흥 없이 “중국의 곡창지대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소 특이할 만한 점은 여느 대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중에 확연히 형성되어 있는 먼지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맑디맑은 푸르른 하늘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역시 시골이라서 그런지 북경과는 다르게 공기가 좋구나..” 라고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더욱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청량한 공기.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따사로운 햇살. “날씨가 굉장히 좋네. 이래서 이곳에 테마파크를 만든건가?”라고 생각했다.

하얼빈 공항은 국제 공항이라고는 도무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고 초라한 터미널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시골이 그렇지 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완다 렐름 리조트 호텔로 향했다. 꽤 달리니 농경지의 모습은 없어지고 도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고층 아파트가 보였고, 또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고층 아파트가 새로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골에 무슨 아파트를 이렇게 많이 짓지?” 의아했다. 도시의 모습이 꽤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쑹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오르자 택시 기사분께서 말씀 하셨다. 하얼빈의 인구는 천만!! 이라고.. 그리고, 방금 지나가 곳이 구도심이고, 쑹화강을 건너면 나오는 곳이 신도심이라고..라고..라고.. 왓?

다리를 지나자 펼쳐진 광경은 마치 거대한 송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인 완다몰!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거대한 인공 구조물은 본 적이 없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스키장이 안에 있다고 한다.

완다몰 안의 모습 또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국이라는 생각이 전혀들지 않는 매우 깔끔한 모습이었다. 한국에 있는 스타필드와 느낌이 비슷했다. 유명 브랜드의 상점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이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출장의 목적지인 VR 테마파크로 들어갔다. 이곳의 규모 또한 엄청났다. 처음 체험한 플라잉 씨어터는 예상 외로 만족스러웠다. (플라잉 씨어터에 대한 내용은 no 공유.)

그리고 나서 우리 모두의 관심은 구석에 있는 HMD를 쓰고 보는 4D 시뮬레이터에게 모아졌다. 상영 콘텐츠가 아바타, 정글북, 클래시 오브 클랜 등의 외국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에 있다는 아바타 라이드가 왜 이곳에?? 알고보니..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에 있는 아바타 라이드 영상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온 것을 그대로 매핑해서 상영하는 해적판 라이드였다. 심지어 촬영할 당시의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 및 대화와 주변 사람들의 팔과 같은 것들이 녹화되어 있는 어이없는 영상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편광 안경을 쓰고 봐야하는 입체 영상을 그냥 그대로 찍어와서 모든 물체가 나란히 두 개씩 보이는 영상물을 버젓이 돈을 받고 틀어대고 있었다. 와.. 역시 대단한 나라네.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엄청나게 큰 스케일에 압도되어 한 방 크게 얻어 맞아서 상실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이곳에 대한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큰 규모에 비해 형편없는 퀄러티의 캐릭터들. 롯데월드 같았으면 족히 10개 이상의 어트랙션이 있을 법한 이렇게나 넓은 공간에 있는 어트랙션은 단 두 개 뿐. 형편없는 운영 능력. 하드웨어는 갖추어져 있지만 안은 부실한 소프트웨어로 힘겹게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 스케일에 압도가 되었을 때에는 코엑스가 웬말이냐.. 롯데월드가 웬말이냐.. 라는 생각과.. 아시아의 디즈니가 되겠다는 원대한 완다의 꿈이 머지않았구나.. 정말 실현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너무나 갈길이 멀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쇼핑몰을 구경하며 지나가다 보니 갑자기 엄청난 냉기가 흘러 나왔다. 우리들 대부분은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이러한 복장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정도의 냉기였다. “뭔 놈의 에어콘을 이렇게 세게 트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실내 스키장 입구 근처였다. 이 냉기의 정체는 실내 스키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두꺼운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슬로프가 3개나 있는 실내 스키장이었다.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입구만 봤지만 뭐라고 할까나.. 일산 원마운트의 빅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말문이 막혀 말이 안나오는구만. 이용로는 렌탈까지 포함해서 8만원 정도한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러시아 거리. 러시아와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러시아 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하얼빈에서 서울의 명동에 해당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100년된 러시아 식당에서 유명한 하얼빈 맥주와 함께 한 저녁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느끼함은 전혀 없었고 어떤 음식들은 한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우리들의 입맛에 맞았다. 맛도 좋았지만 6명이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13만원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식사 후에 러시아 거리를 구경해봤는데 명동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역시 규모는 훨씬 컸다. 건물과 돌로 덮여 있는 바닥은 동유럽 느낌을 물씬 풍겼다.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 젊은 느낌의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중국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Since 1900이라고 적혀 있는 가게들이 꽤 많았다. 잘 아는 바는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러시아와 교역을 하면서 발전한 도시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저기에서 테트리스 배경 음악도 흘러 나왔다.

밤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떠 있었는데,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이렇게 쨍하니 선명하게 밝은 달빛은 처음 봤다.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서 뭔가하고 보니 식빵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사서 먹어 봤는데 맛이.. 너무 맛있다. 식빵같이 생겨서 손으로 뜯어 먹는 빵인데 방금 만들어서 너무 뜨거워서 손으로 잡고 있기가 어려웠다. 겉은 약간 기름에 튀긴 느낌이고 약간의 설탕이 뿌려져 있는 듯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러시아 식당에서 배불리 먹었는데도 모두 너무 맛있게 먹었다. 역시 1900부터 있던 가게라고 한다.

하얼빈이 이런 곳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루 동안의 하얼빈의 모습을 보고 나자 하얼빈을 개무시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촌놈이네.. 중국의 거대한 스케일, 자본력, 그리고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점 또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 동안의 경험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얼빈 국제 공항은 정말 도저히 국제 공항이라고 봐주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의 버스 터미널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느껴졌다. 면세점은 구멍가게 같았고, 식당은 당연히 없으며, 신용카드로 구입이 불가능한 사발면이 거의 유일한 식사 거리였다. 출국 수속은 간단하고 엄청 빨라서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인천 국제 공항의 출국 프로세스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인데 국제 공항이 왜 이 모양인가 싶었는데, 국내선 청사는 꽤 좋다고 한다. 국내선 여행자들은 많지만 국제선 여행자들은 많지 않아서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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